- 어제 막내의 마지막 날이었고, 막내는 내게 향초를 선물하고 갔다. 나도 s 교수님의 책을 전전날인가, 이별 선물이야, 하며 주었었는데, 아마도 그래서일까, 어제 내게 '가장 인기 좋은 향이래요' 하면서 향초를 주고 가더라. 그래서 고맙다고 말하고 헤어졌는데, 마지막 순간 까지도 보쓰에게 인사하고 가라 하니 '어떻게 인사해요?' 라고 내게 물어서 살짝 빡침이 왔지만, 그래도 그간 정이 들어서일까, 막상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보내고나니 기분이 여러가지로 복잡한 거다. 살짝 울고 싶은 기분 같은 것도 되고, 어디가서 잘 살아야 할텐데, 라는 생각도 들고... 쟤 괜찮은건가, 그래 한 편으론 부럽네, 조금 더 잘해줄 걸 그랬나, 어린애인데.... 막 여러가지로 머리가 복잡해서, 어제 술 안마셔야지, 생각하다가 술을 마셔버렸지...는 핑계고, 어쨌든 그랬는데,
오늘 혼자 근무를 시작하는 11월 1일, 보쓰실을 다 치우고나서 걸레 들고 막내 자리 책상을 한 번 닦을라 그러는데, 와, 먼지가 덩어리 져서 쌓여있는 거다. 그냥 책상이. ........
내가 이 친구가 입사하고 나서 자기 책상 닦는 걸 본 적이 없어서 몇 차례 얘기한 적이 있었다. 보쓰실 청소하고 나면 니 책상도 한 번씩 닦아줘라, 내 책상 닦으란 게 아니고, 내 자리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니 자리 니가 알아서 가끔이라도 청소하라는 거다, 라고 얘기 했었는데, 사실 그 뒤로 내가 닦는 걸 본 적이 진짜 한 번도 없고, 내가 가끔 자리 비울 때도 있으니, 더이상의 잔소리는 하지말자, 하고는 가급적 잔소리를 삼가는 편이었는데, 오늘 그냥 책상에, 어떤 숨겨진 공간도 아니고 그냥 책상에, 구석에 먼지 덩어리가 앉아 있는 거 보고 아아, 어제의 어떤 복잡한 마음...짜게 식어버렸다. 아아, 너를 어쩌면 좋으니.
근무할 때도 청소 때문에 내가 잔소리를 많이 했었는데, 그건 보쓰실이었고, 자기 자리 그냥 알아서 가끔씩 닦으라고(매일 닦으라고도 안했고), 그것도 몇 차례 얘기 안했는데, 야... 어떻게 먼지가 쌓이게 그냥 두냐... 먼지 덩어리...그러니까 이런 거는 장농 밑바닥 뒤져야 나오는 그런 덩어리가 그냥 책상 위에 있는 거다... 너 뭐지? 아아, 짜게 식는다, 어제의 복잡한 감정.....
- 어제 '문학하는, 페미니스트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와 나누었는데, 아아, 문학이란, 인문학적 지식이란 무엇인가. 일단 문학적 소양같은 거 베이스로 깔고, 거기에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칭하는 남자라면, 아아, 나 역시 좋은 감정을 갖게 되곤 했는데, 그런 남자들이 실질적으로 여자 알기를 자기 소유물로 아는 경향이 자꾸 드러나서 아아, 페미니스트 남자란 역시 허울뿐인가...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렇지 않지만, 어떤 여자사람들에게 '문학하는 좀 병약한 이미지의' 남자는 되게 매력적인 캐릭터인 것 같다. 예전에도 어떤 여자사람이 에곤 쉴레의 그림 속 남자 같은 병약한 캐릭터한테 끌린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는데, 물론 곰같은 덩치 큰 남자한테도 끌리기도 할 것이고, 서로 끌리는 취향이 다른 바, 나는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면서도, 남자 작가의 책을 그렇게나 많이 읽고, 그 작가의 책이 좋다, 라고 말하면서도, 한 번도 그 작가에 대해서 개인적인 호감이 생긴 적은 없다. 알고싶다, 친하고 싶다, 뭐 이런 식의 감정이 들질 않아서,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작가라도 싸인회를 간다든가 독자와의 만남에 간다든가 하는 일이 없는데, 아아, 어떤 사람들에게 글쓰는, 문학 하는, 그리고 페미니즘이 장착됐다고 스스로 말하는 남자들은 참 ... 매력적인가 보다. 물론, 페미니즘 장착된, 페미니스트라 칭하는 남자에 대해서 나도 좋은 생각을 가진 바, 아아, 요즘 그런 남자들한테 번번이 실망하고 놀라면서, 남자는 진짜 페미니스트 될 수 없는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남자가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이번에 서민 교수님도 또 손아람 소설가도, 남자가 할 수 있는 건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것 보다는 조력자에 가까운 것 같다, 라고 했었는데, 진짜 그게 맞는 것 같다. 아니, 어떻게 지 입으로 페미니즘 얘기해놓고, 그렇게 이 쪽에선 이 여자 만나고 저쪽에선 저여자 만나고, 그거 의심 받으면 오히려 여자를 윽박지르는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물론, 페미니즘이 완벽한 인간을 뜻하는 건 아니고,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도덕적으로 흠이 없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아아, 그래도 여자 알기를 자기 소유물로 알면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면 안되는 거잖아? 하비 웨인스타인도 지금의 폭로가 있기 전, 스스로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발언을 엄청 하고, 여성학 공부에 돈도 많이 기부했다는데, 페미니즘은, 어떤 남자들에겐, 그저 여자를 후려치는 용도로 쓰이는 수단인가 보다...
아아, 왜 어떤 남자는 아예 페미니스트를 무시하면서 여자를 후려치고 왜 어떤 남자는 나는 페미니스트야, 라고 하면서 여자를 후려치는걸까.. 인생 뭐지..남자 뭐지....
나는 너무나 현명하여,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도 재이슨 스태덤을 좋아했지.... 나 만세!!
- 나는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 역시 상대를 무시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싫다고 전화번호까지 차단했는데 왜 또 와서 댓글 달고 있는거지? 내가 분명히 지난 댓글에서 화 냈었는데, 왜 보란듯이 개같은 댓글을 달지? 아, 진짜 한남들, 거절을 좀 거절로 받아들여라. 왜 싫다는 데 자꾸 얼굴 들이밀고 난리야? 싫어, 싫다고! 싫다는 데 얼굴 들이밀면 더 싫어!
- 엊그제 김생민에서 들었던 31세 직장 2년차 남자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된다. 월급이 190만원인데, 아아, 월세가 40만원..... 아아, 월세 너무 크다, 저거 너무 아까워, 아아, 진짜 너무해..월세 40.... 이게 너무 발목을 잡고 있는 것 같은 거다. 그런 한편 뭐랄까, 사랑과 사랑에 빠졌던 느낌, 여자 친구 있는 자기 자신을 좋아했던 느낌 같은게 나는 그 방송에서 느껴졌다. 아직 어리고(31살!) 월급도 적으니, 그만큼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겠지만, 뭐랄까, 자기가 살고 있는 삶에서 여자친구에게 딱히 그렇게 돈 쓴다는 느낌을 나는 못받겠는 거다. 그런데 듣다 보니 이별후에 여자친구로부터 받았던 몽블랑 지갑을 팔아서 15만원인가 수입이 생겼다고.... 이 남자는 놀이공원 간다고 김밥천국에서 김밥 사고, 머리따 4천원짜리 사주고, 저녁으로 햄버거랑 감자튀김 먹었는데, 여자친구한테는 몽블랑 지갑을 받았었다....니. 남자가 헤어진 후에 김생민한테 영수증 보내면서 '다음 연애할 때는 경제적으로 당당한 사람이 되어있고 싶다'고 한 게 어쩐지, 그 속사정을 대변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어쩐지 좀 .... 31살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이제 마흔을 넘긴 나로서는, 아아, 지금이 좋다!! 하게 되는 거다. 뭔가 어딘가 자꾸 찌질함이 묻어났어...그런데 자기 개인을 위해서는 딱히 찌질하다는 생각은 안들었고..... 출근 시간 4분전에 스타벅스에서 커피 사마시는 깡따구는... 뭐지? 그거 들고 사무실 가면 아무리 사무실이 같은 빌딩 혹은 옆에 빌딩이라고 해도 너무 간당간당 하잖아? 김생민과 김숙과 송은이는 그 남자가 여자친구한테 엄청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찌질함이 느껴졌어. 최선은 그런 게 아닌 것 같아... 자기 자신을 위해 돈 쓰는 건 300만원 버는 것처럼 쓰는데, 여자친구한테 돈 쓸 때는 190 버는 것처럼 쓰는 것 같아서, 내게는 찌질하고 최선이 뭔지 모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딘가 뭔가 걸리적거려....
- 어제 친구를 만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 B 랑 통화를 하는데, 그가 내게 고맙다고 했다. 자기 멘탈이 흔들리고 있을 때 나 때문에 많이 잡게 된다면서. 그는 내게 멘탈이 흔들린다고 말한 적도 없고, 나는 그에게 멘탈 흔들릴 때 나한테 기대, 라고 말한 적도 없는데, 그냥 서로의 일상에 대한 수다들을 떨면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멘탈을 잡는 데 도움을 줬다니, 이거 되게 좋으네, 라고 자기 전에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