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들과 지내는 동안 피오나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밀려드는 사랑으로 목이 메고 눈이 따가워지는 경험을 두 번이나 했다. 그녀는 자신이 늙고 어리석게 느껴졌다. 잭이 아이들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다시 확인하는 일도 괴로웠다. 예전에 처남의 세 아들에게 해줬던 것처럼 그는 허리가 삐끗할 위험을 감수해가며 두 아이를 등에 태워 요란하게 말놀이를 했다. 아이들은 사람 소리 같지 않은 비명을 지르며 좋아했다. (p.185)
당신이 원하는 걸 해주지 못했을 때, 그리고 해줄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때 내가 느끼는 슬픔은 얼마만큼의 크기일까.
몸을 뒤척이자 축축하고 차가운 베개가 얼굴에 닿았다. 이제 완전히 잠에서 깬 피오나는 베개를 옆으로 치우고 다른 베개 쪽으로 손을 뻗다가, 등 뒤 옆자리에 길게 누운 따뜻한 몸이 손에 닿자 흠칫 놀랐다. 피오나는 돌아누웠다. 남편이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모로 누워 있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눈을 가린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다정한 손길이었다. 복도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에 그의 얼굴이 간신히 보였다.
잭이 말했다. "당신 자는 거 보고 있었어."
얼마 뒤, 한참이 지난 뒤, 그녀가 속삭였다. "고마워."
그리고 물었다.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도 여전히 자신을 사랑할 것인지. 성립되지 않는 질문이었다. 잭은 아직 아는 게 거의 없으니까. 죄책감을 느낄 일이 아니라고 그가 자신을 타이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잭은 그녀의 어깨를 끌어당겨 안았다. "물론 그럴 거야."
그들은 어둑한 방에 마주 보고 누워 있었다. 침실 밖에서 빗물에 씻긴 거대한 도시가 부드러운 밤의 리듬 속으로 가라앉고 두 사람의 결혼생활이 불안하게 제자리를 찾아갈 때, 피오나는 남편에게 조용하고 한결같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자신이 느끼는 수치심과 다정한 그 소년이 지녔던 삶의 열정과 그의 죽음에서 자신이 맡았던 역할에 대해. (p.289)
- 저자
- 이언 매큐언 지음
- 출판사
- 한겨레출판사 | 2015-07-28 출간
- 카테고리
- 소설
- 책소개
- 《속죄》의 작가 이언 매큐언의 최신작 출간 직후 30만부 판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