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 해당되는 글 425건

  1. 2015.07.13 주말 7
  2. 2015.07.10 그러지마요. 4
  3. 2015.07.09 매니큐어와 사례금 2
  4. 2015.07.08 지갑 4
  5. 2015.07.03 도시락
  6. 2015.06.29 건강한 연애 2
  7. 2015.06.26 사회적 동물 2
  8. 2015.06.25 대화 7
  9. 2015.06.22 우울했던 어제, 그렇지 않은 오늘 2
  10. 2015.06.21 차분하고 침착한 태도 2
2015. 7. 13. 10:44

- 토요일엔 노가리모임이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떤 불쾌한 경험이 없었고 어떤 불편한 경험도 없었던 만남이 노가리모임이 아닌가 싶다. 뭐, 그러니까 계속 만나는 거겠지만 말이다. 여튼 만나기전부터 좋은게 노가리 모임이고 만나서도 좋은게 노가리 모임이다.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거나 하지도 않고 서로 다른 것들에 대해 아 그러냐 며 고개를 끄덕이는 게 몹시 좋다. 무엇보다 좋은 건, 충분히 생각을 한다는 거다. 그러니까 고민을 한다는 것. 어떤 사안에 대해서든 고민을 한다는 건, 무조건적인 확신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하고, 대화를 하다보면 그들이 그렇게 고민하고 판단을 하는 것 같아서 그 점이 몹시 좋다. 그래서 만남이 유쾌한 것 같다. 게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나눌 수 있는 대화의 범위가 더 넓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보다 확실히 더 많은 것들을 얘기한다. 남자 얘기 하는 것도 좋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아무도 메뉴에 대한 불만을 품지 않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짱좋음. 다같이 평냉을 먹고 황태와 쥐포를 시키고 계란말이를 먹고 돈까스를 겁나 맛있다며 먹는 게 너무 좋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같이 술을 즐기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싼 맛 나는 돈까스를 흡입하는 게 너무 즐거워. 어제 B와 대화하다가도 말했다. '이 모임은 한 번도 나빴던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도 좋았어' 라고. 활기가 넘치고 에너지가 넘치는 모임이다. 사람들이 참..좋아. 그리고 누가 뭔가 고민하면 그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다같이 스맛폰 들고 검색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때가 제일 좋았음. 웃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오늘 뜬금없이 중2병에 대한 대화를 B 와 하게 됐는데, 학창시절 컨셉을 '도도한 천재'로 잡아서 전교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공부를 했다는 누군가의 얘기였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나 역시 '도도한 천재' 컨셉을 잡았음을 얘기했다. 시험 성적은 나쁘지만 머리는 좋은 천재, 머리는 좋지만 공부를 안해 성적은 나쁘고 공부에 무관심한 아이. 이런 컨셉이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무슨 이게 컨셉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시간이 지나니까 나는 그냥 머리 나쁘고 공부 못하는 아이었다. 컨셉이 아니라 컨셉인줄 알았던거였음. 그냥 공부도 하기 싫고 머리도 안좋은 그냥 .. 애. 노멀 스튜던트. 암튼 이게 생각나서 웃겼다. 



- 토요일 노가리 모임에 나가기전에 미용실에 들렀다. 머리가 많이 자랐어요, 짧게 해주세요, 그렇지만 몽실이가 되어서는 안돼요, 라고 원장님께 말씀드렸더니 웃으며 알겠다고 해주셨다. 앞머리는 좀 더 많이 내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라고 하자 문제없다며 내가 원하는 스타일대로 해주셨는데, 와, 진짜 돈이 안아까워. 머리 잘라놓고 너무 마음에 든다고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내가 혹여라도 다른 데 이사가게 된대도 미용실은 여길 와야겠다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원장님의 성격이라든가 대화상대로는 딱히 좋진 않은데 머리는 진짜 내가 말하는 걸 그냥 찰떡같이 알아듣고 해줌 ㅋㅋㅋㅋㅋ




사진은 토요일, 미용실 원장님의 드라이빨. 오늘 나의 드라이빨과 비교사진 올리고 싶었지만 비가 와서 습한 관계로다가 헤어스타일이 병맛...비교할 수 음슴.



- 어제는 남동생과 함께 집청소를 했는데(주말마다 우리 둘이 함께 한다), 와, 날이 습해서 그런지 땀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진다. 그렇다면 이 땀을 이대로 버리기보단 이 참에 운동까지 고고!! 하고 남동생과 함께 운동을 했다. 뭐 함께라고 해봤자 걔도 운동하고 나도 운동한거지 둘이 마주보고 으랏차차 한 건 아니고..여튼 하면서 틈틈이 야 나 자세 봐줘, 같은 거 하고. 데드 리프트 강습받다가 '야, 나 이건 나중에 할게 못하겠다 포기포기' 이러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그랬더니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근육통이 또 장난 아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런데 근육통은 왜 쾌락을 동반하는가! 나쁘지 않아...




- 청소를 하고 운동을 하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샤워를 하고 백화점엘 갔다. 음, 화장을 하기 싫어서 그냥 민낯으로 갔다. 알게뭐야, 누가 본다고. 하는 마음이 되어 배째라 그냥 갔다. ㅎㅎㅎ 여튼 그래서 갔는데, 간김에 예전부터 마음 먹었던 신민아 목걸이 착용을 한 번 그냥 해봤다. 목걸이가 목에 걸리는 순간 예쁘긴 했는데, 직원들이 들고 있는 거울에서 그 목걸이가 걸린 목보다 민낯이 더 확 눈에 띄더라. 아... 제기랄. 화장을 하고 올걸. 턱에 난 작은 뾰루지가 너무 신경을 건드려...역시 신민아는 신민아고 나는 나인건가...... 제기랄.


그리고 C 매장에 들러 향수를 사는데, 고객님 앉아서 잠시 기다리세요, 라며 의자를 권해서 뭐 늘 그랬듯이 앉았는데, 아니 세상에 직원이 내가 사는 향수 라인의 바디 로션을 들고 오는 게 아닌가. 혹시 이건 사용해 보셨어요? 라면서. 아뇨, 라고 했더니 한 번 발라드릴까요? 란다. 아는 향이지만 네, 하고 한 쪽 팔을 내밀었더니 직원분이 내 팔에 발라준다. 다 바르고나서 내 팔을 들고 향을 맡는데. 악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무 좋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신세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정신이 혼미해지는데, 그런 나를 보고 직원분이 신세계죠? 라면서 웃는 거다. 그래서 내가 나도 모르게 그만, '네, 남자 만나러 가고싶어요' 라고 했고, 직원분 빵터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건 얼마죠? 물으니 200ML 에 78,000원 이란다. 나는 이미 나가버린 정신을 다시 불러 모아 수습하고, 그냥 향수만 주세요, 했다. 그러자 계산하면서 샘플로 아이크림을 주는데, 저는 주름보다 다크가 짜증나는데 다크에 좋은가요? 물었더니 다크에 좋단다. 얼마인가요? 했더니, 14만원? 하하하하하하하하. 그냥 향수만 주세요, 했는데 이거보다 더 성능 좋은 아이크림도 있다며, 그건 22만원이란다. 아, 내 정신....그냥 향수만 주세요, 라고 또 말하고 그냥 향수만 사가지고 나오면서 머릿속에서 아이크림 생각을 떨쳐내기가 힘들었................하아- 


책을 팔아 아이크림을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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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
2015. 7. 10. 09:48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3827


오늘 트윗에서 본 시사인 기사인데, 초등학교 1학년 교사가 숙제를 해오지 않은 아이를 '1일왕따'로 지정하는 벌을 주었다고 한다. 하아- 난 진짜 이거 읽고 너무 가슴이 아팠어. ㅠㅠ


어릴 적의 나는 그리고 어른이 되고나서도, 나는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었다. 교사가 하나의 직업이라는 사실을 무시한채, 어떤 '완벽한' 인간에 가깝다고 생각한 것. 교육자는 다른 직업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를 거라고 생각한 거다. 그러다가 교사를 언니로 두고 있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교사인 동생과 제부를 보고, 교사인 친구와 대화를 하고 이런 것들을 겪으면서 교사도 결국 직업의 하나일 뿐, 결코 내가 생각하는대로 '제법 어른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직업은 다른 직업보다 더 많은 위험을 갖고 있었다. 위에 링크한 기사처럼, 교사라는 권력을 휘둘러서 아이들에게 미친 벌을 줄 수도 있었다. 아니, 어떻게 아이들을 왕따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 기사를 읽는 내내 너무 아팠다. 학교 가는게 두려워서 우는 아이라니. 왕따 되면 어떡하냐고 울게 만들다니. 왕따를 '가르치는'게 교사가 할 일인가. 왕따를 벌로 주는 교사라면, 학부모들이 요청한대로 아이들과 가까이 하지 못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어서도 안되는 벌이라니.


아르헨티나 영화였던, 그 제목이 뭐였지, 제기랄, 허구헌날 제목이 기억이 안나...여튼 그 영화보면 범죄 피해자가 범죄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다면서 집에 가둬두고는 꼬박꼬박 밥을 주되, 한마디 말도 걸지 않고 한마디 말도 들어주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피해자는 오랜동안 갇혀 있으면서 극심한 고통을 느낀다. 그가 잔인하게 피해자의 아내를 살해했다는 걸 알면서도, 그 벌이 굉장히 무섭다고 생각했더랬다. (제목이 무슨 눈...이었던 것 같은데...) 어른에게도 그 무서운 벌을, 아이에게 내려 공포에 질리게 하다니. 



나는 정말이지, 아이들한테 생각없이 저지르는 모든 행위들이 싫다. 내게 아이들의 울음 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다. 몸이 아파서 우는 아이들을 보는 것만해도 내가 다 아파서 눈물이 날 것 같은데, 그 작은 머릿속에서 공포와 두려움이 뒤죽박죽 섞여 있을걸 생각하니, 미쳐버릴 것 같은거다. 아이들을 때리고, 윽박지르고, 성폭행하고, 왕따를 시키는 어른들은, 그냥 다른 세계로 격리시켰으면 좋겠다. 아, 정말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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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
2015. 7. 9. 08:07

​멀리 있는 친구가 빨간 매니큐어 바른 손을 보여주길래 오랜만에 나도 예쁘게 매니큐어나 발라보자 하고 칠해봤다. 칠할 때는 기분이 좋았는데 칠하고나니 한숨이 났다. 하아- 이렇게 바르고 갔다가는 보쓰....아아아아. 이 보수적인 보쓰. 너무 요란한가? 아냐 뭐 어때, 내 손톱인데. 하다가 아아아아 너무 요란한가, 싶어서 매니큐어 칠하고나서 방안을 왔다갔다 반복하다 그만, 다시 지워버렸다. 집에 가면 다시 연한 걸로 해야겠다. 히잉 ㅠㅠ



민음사 오늘의 작가상 추천사례금이 오늘 들어왔다. 세금 떼고나니 얼마 십만원도 안됐을 뿐더러, 제기랄, 그거 하겠다고 내가 국내도서를 자꾸 사서 읽었...그거 하겠다고 책 사는데 들어간 돈이 십만원 거의 다될듯..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 나는 돈을 번 것인가 길에 뿌린것인가. ㅠㅠ 그냥 읽었던 책중에서만 해서 순이익 십만원을 남겼어야 되는데, 나름 책임감 느낀다고 최선을 다하자며 더 좋은 다른 책이 혹시 있을지 모르니 어디 한번 읽어보자, 이러고 사서 나에게는 결국 무이익.. ㅠㅠ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가? 나는 올바르게 살고 있는가? 역시 나는 글써서 돈을 벌 순 없나? 그게 내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그래도 추천위원들 명단 보고 오오오- 했다. 누가봐도 알 수 있는 이름이 수두룩한 가운데 내 이름이 있고, 무려!!, 이승우도 있다. 내가 이승우가 하는 일을 같이 했어! 엄훠! >.<

나 좀 짱인듯!! 저들 이름 가운데 내 이름이 있다니. 움화화화핫. 




돈 대신 내가 얻는 것은 무엇? ㅠㅠ 난 돈이 좋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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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
2015. 7. 8. 11:44


요즘엔 지갑을 물끄러미 볼 때가 많다. 낡은 게 눈에 확 띄기 때문에. 모서리마다 낡은 게 확연히 드러난다. 앞면 뒷면은 많이 때가 탔고. 여튼 전체적으로 낡았다. 이걸 언제부터 썼더라, 생각해보니 잘 생각나지 않는다. 몇해전 생일선물에 남동생으로부터 선물 받은 지갑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새로 장지갑을 산 지 얼마 안됐을 때였다. 백화점에 갔다가 우연히 본 장지갑이 너무 예뻐서 큰 맘 먹고 지갑을 샀는데, 며칠 들고다니지도 않아 무겁고 커서 불편하게 느껴지는 거다. 마침 생일이 다가왔고, 선물 뭐해줄까 묻는 남동생에게 같이 가서 지갑 사줘, 라고 한 거다. 그래서 백화점에 같이 가 내가 고른 지갑. 가벼울 것, 작을 것이 내가 고르고자 한 기준이었는데, 이 지갑은 그 기준에 딱 맞았더랬다. 그래서 그 때부터 한 번도 다른 걸로 안바꾸고 이 지갑만 계속 썼다. 그 해에 내가 사둔 장지갑은 새 것인 상태로 책장 서랍에 들어가 있었고.


이 지갑을 보는데, 아, 나 참 물건 하나 오래 진득하게 쓰는구나 싶다. 아마도 내가 쓰고자 했던 조건에 맞춤한 물건이라 그랬겠지만, 참 낡을 때까지 질리지도 않고 잘 써. 기특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다. 


그러고보면 나는 그간 핸드폰도 고장나야 바꿨고, 직장도 오래 한 곳에 다니고 있고, 음식점도 갔던 데를 주로 가는 편이었다. 가방도 한 번 들고 다니면 그것만 계속 들고나니고, 신발도 그렇게 신곤 하는데, 모든 것에서 질릴때까지, 고장날때까지, 망가질때까지 함께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간 왜 연애에 있어서만큼은 그렇게 짧게 짧게 툭툭 끊어냈던걸까? 하고 갸웃하게 됐다. 왜 연애는 길게 못하지? 내가 못해서 그런지 길게 연애하는 사람 보면 엄청 신기하다. 그래서 제이슨 스태덤이 더 좋아지는 것 같다. 로지도 그렇고. 멋져. 아..근데 내가 또 왜 이야기가 이리로 흘러가나..


여튼, 그래서 지갑이 너무 낡아 새것으로 바꿔야겠다 싶은데, 책장 서랍에 이미 새것인 장지갑이 있으니 그건 문제가 안된다. 다만, 이 낡은 지갑을 어째야하나 싶다. 낡아서 안 쓸거고 새것으로 바꿀 것이니 버려야하나 싶다가, 아, 이렇게 내가 써서 나한테 길들여져서 낡아버린 지갑을, 도무지 어떻게 버리나 싶은 거다. 널 .. 내가 어떻게 버리니? 이렇게 정들었는데? 아아아- 그렇다고 쓰지도 못할 물건, 뒀다 뭐한담? 이걸 결정을 못해서 집에 새지갑이 있는데도 바꾸지를 못하고있다. 


내가 널 어떻게 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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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
2015. 7. 3. 08:44

-  오늘은 보쓰가 없다. 해서, 막내를 쉬라 했다. 사무실에 나 혼자 있는 것. 물론 옆에 연구실도 있고 임원실도 있지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갔다 해야만 사람이 보이니 일단 비서실에는 나 혼자 있는 거다. 이렇게 간혹 혼자 있을 때면 사무실을 비워둘 수 없어, 혼자 배달 음식을 시켜먹곤 했었다. 아니면 샌드위치나 김밥을 사온다거나. 그런데 오늘은 도시락을 싸왔다. 우리집 밥의 질의 정말 너무 좋아서 식당 밥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데, 이왕 밥을 먹을 거라면 우리집껄로 먹자, 싶었던 것. 


진미채볶음과 깻잎, 총각김치(달랑무)를 반찬으로 싸두고는 밥을 꾹꾹 눌러담은 도시락을 준비하고, 뭔가 육덕진걸 뭘 넣을까 생각하다가 아침에 부지런히 스팸과 파프리카를 넣은 계란을 준비했다. 계란을 깨서 막 저은 다음에 썰어둔 스팸과 파프리카를 넣고 또 막 젓고 올리브유 두른 프라이팬에 익혀낸 것. 내 도시락에 들어갈 사이즈만큼 잘라내 밥 위에 얹었다. 아웅 좋아. 나머지는 오늘 퇴근하실 아빠와 출근할 남동생 먹으라고 프라이팬에 두고 왔다. 착하다, 나. 여튼 이런 건강한 도시락을 손수 준비해 오니 너무 뿌듯하다. 아침에 출근해서 반찬을 냉장고에 넣어두기 위해 도시락을 꺼냈는데, 훗, 지금 먹고싶다!! 라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윽- 그러나 참아야지. 뼈로가는 칼슘두유 하나 마시고.



- 먼 곳에 있는 J 와 나는 서로 배틀붙은 것마냥 찌질함을 겨룬다. 찌질함, 너 어디까지 해봤니? 랄까. 내가 나는 이러이러하다, 라는 찌질함을 던지면, J 는 '나도나도!' 하고 받은 뒤에, '난 이러이러하다' 하고 다시 던진다. 그러면 나도 그것 받고 더, 더. 우리 둘다 지금 인생 최고의 사람을 만났다고 얘기하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기를 즐기는데, 너무 좋아해서 두려운 마음까지도 J 의 것과 내것은 닮아있었다. 내가 출근해야 하는 아침시간이면, J 는 오후를 살고 있다. 나는 사무실에 오는 길이거나 사무실, J 는 까페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말을 걸고 서로의 감정에 귀기울여준다. 좋은게, 어제는 내가 '이러이러하다' 라고 말했더니 그런 나의 감정에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같다' 라고 하는거다. 바로, 그거다, 나는 그 책을 최근에 다시 읽었다, 라고 하며,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정말 짜릿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같은 친구는 너 하나면 된다, 고 나는 말했다. 너 만으로도 이런걸 나누기는 충만하다고.



- 어제는 전남친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화들짝 놀랐고, 읽지 않고 삭제했다. 어? 그러고보니, 내가 이사람의 번호를 핸드폰에 남겨두어야 할 이유가 뭐지, 싶어지더라. 삭제를 할까하다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이 번호 차단'을 눌렀다.



- 어젯밤에 B와 나는 인터넷으로 뭔가 좀 찾아볼 일이 있었다. 서로 통화하며 스맛폰으로 찾아보다가 이내 답답해진 나는 노트북을 켰다. 바스락바스락거리는 소음이 그에게 전해진 터, 그는 뭘하느냐 물었고 나는 노트북을 켰다고 말했다. 노트북 위에는 내가 보다가 던져둔 책이며 시사인 같은 것들이 올려져 있었던 거다. 그것들을 치우고 놋북 뚜껑을 열고 켜고 하는 데서 발생한 소음이, 전화기 상으로 그에게 전달됐다. 그리고는 이건 어떨까, 이거 한 번 봐봐, 하며 서로 인터넷으로 찾은 걸 공유하고 대화를 하는데, 오늘 아침 돌이켜보니 이 시간이 막 너무 좋은 거다. 물론 내가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동안에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고, 그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에는 화면의 글자를 해독할 수 없었지만 -나는 왜이럴까-, 같은 걸 보고 같은 걸 찾는 게, 별거 아니지만 되게 좋은 거다. 출근하는 동안에는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둘이 보니까 다르네' 라는 뉘앙스의 말이었던 것 같은데, 이걸 내가 화면을 보면서 들어 바로 캐치하지 못했다. 이게 무슨 뜻인지 바로 물었어야 되는데, 아침에서야 그런 말을 들었다는 게 떠오르면서, '아, 그게 뭐였지? 무슨 뜻으로 왜 한 말이지?' 하는 생각이 든 것. 하아- 나도 멀티가 됐으면 좋겠다. 멀티가 안되니까 놓치는 게 많아. 어제의 일도 그렇고, 최근에 그와 많은 대화를 도란도란 나누면서,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생각이 났다. 리스베트가 한밤중에 미카엘을 보는 장면.


한밤중에 잠이 깬 그녀는 침대 위에 자기 혼자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더니 그가 열심히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손으로 턱을 받치고 그를 한동안 바라다보았다. 그는 행복해 보였다. 갑자기 그녀에게도 묘한 느낌이 찾아왔다. 산다는 것이 자못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스티그 라르손, [밀레니엄] 中



- 얼른 도시락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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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
2015. 6. 29. 10:50

​어제는 내가 주문한 것도 없는데 커다란 박스로 택배가 도착했다. 이름을 확인하고는 어, 이분이? 하고 상자를 열었더니 그 안에는 초콜렛과 노트, 달력, 색연필 등등의 것들과 함께 이렇게 손으로 직접 만든 생리대가 들어있었다. 이 생리대 안에 넣을 수 있는 광목손수건도 잔뜩 넣어 보내셨던데, 와- 내게는 아주 요긴한 게 아닌가. 안그래도 여름철에는 일회용생리대 쓰는게 참으로 고통스러워 천생리대 쓰자 싶었는데, 이토록 적절한 때에 보내주시다니. 기분이 좋아졌다. 게다가 손수만든거라시며, 우주유일 생리대라고 하셨다. ㅎㅎㅎㅎㅎ 디자인도 예쁘다 >.< 너무 좋아!!




빨아야 할 때면, 아 그냥 일회용 쓸까 하다가, 또 여름에 일회용 착용하고 나면, 역시 천생리대로 가야해, 하게 된다. 이긍.



어제는 ㅅㄹㄴ 몰카부터 시작해서 트윗에서의 무방비 노출 사진들에 대한 것까지(내가 진짜 트윗 멘션 타고 갔다가 누드 사진과 성관계 사진 나와서 완전 당황했다ㅠㅠ) B랑 대화를 나누다가, 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왜이렇게 성에 대한 것들은 퍼지고야 마는걸까, 하는 생각을 하게됐다. 공중화장실에서 나는 옆칸에 들어와 나를 훔쳐보던 남자와 눈이 마주친 적도 있었다. 나가요, 라고 말한 뒤에 무서워서 펑펑 울던 것까지. 성매매에 대한 것까지 한시간 넘는 대화를 하면서, 내가 얘기했다.


우리는 건강하게 연애하자, 내가 건강하고 네가 건강하니 우리는 건강한 연애를 할 수 있을 거야, 라고. B는 그러자고 했다. 건강한 연애를 하자고. 


스케일링 받은지 6개월 지났으니 다시 스케일링 예약을 해서 받으라고 하며 B는 '애인이 늙어서 이런걸 챙겨줘야 해' 라더라. 아아- 나는 왜 늙은 애인인 것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어쨌든 치과적으로도 건강한 연애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어제는 건강한 연애가 중요하다, 라고 생각하고 건강한 연애를 하자, 라며 대화를 마치고 잠이 들긴 했는데, 오늘 아침 일어나보니 내내 머릿속에서 건강한 연애라는 단어가 떠나질 않는다. 대화도중 생각나 불쑥 말하게 된 것이지만, 사실은 가장 지향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남는 말이다. 건강한 연애, 하고 계속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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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
2015. 6. 26. 17:01

어제는 퇴근하고 집에 가자마자 세면도구를 챙겨 목욕탕엘 갔다. 뜨거운 탕에 들어가 몸을 푹 담그니 아 좋다, 하는 말이 나오더라. 기운 없던 몸을 목욕탕에서 쉬다니, 늙는다는 것은 이런것이로구나, 했다. 그리고 세신을 받았다. 굵은 때가 박박 밀렸다. 윽, 이게 다 나의 육체에서 나온 것이란 말이냐.


막내가 핸드폰을 바꿀 때가 되어 아이폰과 갤럭시를 놓고 꽤 갈등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 블로그에서 아이폰과 갤럭시 셀카 비교한 것을 보고 갤럭시를 사야겠다고 살짝 마음이 돌아선 와중에, k대리가 갤럭시 신제품으로 핸드폰을 바꾼 거다. 그 폰으로 셀카를 찍어보더니 숑- 반해서는 이번주말에 핸드폰을 새로 바꿀 것이며, 갤럭시로 마음을 굳혔다고 했다. 아, 이렇게나 선택의 기준이 다르구나 싶어서 재미있었다. 셀카가 어떻게 나오느냐로 인해 핸드폰을 선택하다니. 그러니까 셀카가 핸드폰을 선택하는 가장 큰 기준이 되다니. 나로 말하자면 여태 핸드폰을 사용하면서 한 번도 셀카가 선택의 요건이었던 적이 없는데!!!!!!!! 정말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은가.



참외도 마찬가지. 목욕탕에서 돌아온 어젯밤, 배가 고파 과일을 먹으려는데 집에 있는 과일이 참외밖에 없는 거다. 나는 과일중에서 참외를 좀 싫어라 하는 편인데, 일단 깎아야 되는게 싫고, 참외 씨가 싫다. 그래서 잘 안먹는 과일인데, 그것 밖에 없고 배가 고파서 어쩔 수 없이 깎아 먹었다. 씨가 너무 싫어서 좀 발라내고 먹는 편인데, 이거 다른 사람들이 보면 혐오스럽다 하겠지 싶어 의식적으로 먹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도 혼자 먹을 때는 좀 밀어내... 여튼 어제는 그렇지만, 배가 너무 고파서 씨까지 다 흡입하고서, 이 얘기를 B 와 나누었다. 그랬더니 B 도 '사람들이 참외씨는 대체적으로 다 싫어하지 않나?' 하는 거다. 그래서 '우리 타미는 어릴때 참외를 씨만 먹더라'는 얘기를 했었었는데, 오늘, 


막내랑 참외 얘기를 나누다가 내가 나는 씨가 너무 싫어서 참외 먹기가 싫다고 했더니 막내가 '아 그래요? 전 씨가 좋은데!' 하는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참외 씨만 먹는 사람, 너였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회사에 출근하면 최근에는 미숙이랑 가장 대화를 많이 한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주제는 매우 다양한데, 지난번에도 한 번 언급했다시피 페미니즘, 연애, 친구, 책, 알라딘 등등 여기에서 저기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 채로 이 얘기 저얘기 나눈다. 세상사람들과 우리가 좀 다르게 보는 게 있다 싶으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하며 조심스레 의견을 묻고 또 상대의 의견을 듣기도 한다. 그러다 의견이 같은 걸 알면 좀 안도하게 된달까. 암튼 오늘도 무슨 얘기로 시작했는지 모르겠는데 어찌됐든간에 마지막 대화는 친구였다. 내가 최근에 친구로부터 상처 받았던 것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내가 내 감정이 앞서는 사람이라는 지적을 받은 것에 대한 얘기였는데, 와- 미숙이가 그 말을 듣고 완전 나에 대해서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이야기해주며 내 편을 들어주는 게 아닌가.


너는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지 감정이 앞서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내가 너에게 무언가 물어보거나 조언을 구할 때 너는 항상 모든 상황을 생각해보고 답했으며, 아무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을 때는 니 감정대로 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상대의 감정이 중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누구보다 신중했다, 너랑 몇 년간 베프로 지냈으면서도 그런것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다니!! 하면서 다다다다다다다닥해줬는데, 모니터로 그걸 물끄러미 보는데 뭔가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ㅠㅠ 아, 나는 뭔가 사춘기 소녀가 된 것 같다. 역시 인간의 삶에서 궁극적인 목표는 내 편 만들기 인가.... 미숙이랑 대화하면서, 아, 나 조낸 잘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애는, 내 삶에서 한 순간도 최우선이었던 적이 없었다. 나에게는 그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었다. 혹은 연애랑 같은 강도로 중요한 것들. 안나 카레니나가 브론스키에게 모든 걸 걸다 파괴되는 것, 그것은 그녀에게 브론스키가, 브론스키를 향한 사랑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안나는 모든걸 다 브론스키에게 걸었다. 그 연애, 그 사랑에, 그 사람에.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돈 버는 수단으로써의 내 일이 중요하고, 내 몸 하나 살아가는 게 중요하고,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중요하고, 이런 것들과 비슷하게 연애가 중요하다. 연애 하나만 앞으로 쑥 나오고 다른 걸 뒤로 밀어 본 적은 없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느끼는 건데,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인정 받았을 때, 이를테면 출판사 대표님이 날 찾을 때, 책이나 글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날 찾을 때, 그때의 기쁨은 연애에서 오는 만족감과 비슷한 강도로 크다. 내가 여기에 서있네, 하는 자각이 들때면 때론 뿌듯해지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해서. 그리고 그럴때에는 꼭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 이렇게 스스로도 자랑스러울 만큼 자랐어, 하고 말하고 인정받고 싶어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데, 나에 대해서라면 확실히 그렇다. 나는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고, 이야기를 나눌 주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크게 만족한다. 나의 에너지를 나누어주고 또 다른 사람들로부터 에너지를 받기도 한다. 나는 사소한 것에서 영감을 받고 또 사소한 데서 기쁨을 느끼는 능력이 아주 큰 사람이라, 그래서 그게 무엇이든 하나만 툭, 불거져나와 최우선이 되지는 않을 수 있는 것 같고, 나는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무척 흡족하다. 그러니까, 다이어트만 성공하면 되는데.....그러면 완벽한데..... 요즘엔 내가 왜 다이어트에 성공하지 못하는가를 곰곰 생각해봤다. 너무나 명확한 답이 나왔다. 나는 나의 큰 육체를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 것 같다, 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뭐 다이어트가 벌써 끝난것도 아니고, 나는 이제 지금까지보다 뭔가 더 하기로 결심하였으니, 어디 할 때까지 해보기로 하겠다.


근데 회사를 다니면..너무 빡치는 일이 많아....퇴근할 무렵만 되면 술 생각이 나...제기랄...

근데...회사 다니기 전, 학교 다닐 때도 그랬어. 학교를 맨날 빼먹어도 뭔가 맨날 술 마실 꺼리가 있긴 했지.



오늘은 엄마가 돌아오는 날이다. 얼른 집에 가서 엄마랑 놀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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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
2015. 6. 25. 16:27

- 엊그제는 이 일기장에 굉장히 긴 비밀댓글이 달렸다. 읽어보다 울컥 했는데, 그중 일부만 옮겨보겠다.


객관성이니 인간해방이니, 말이 파놓은 함정에 꼬꾸라지지 마세요. 제가 아는 락방님은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는 섬세한 독자이고, 건전하면서도 자주 사랑스러운 생각들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재주가 있는 사람인데, 무엇보다 락방님이 탁월한 것은 공감능력이라고 늘 생각했어요. 저는 페미니즘의 대한 락방님의 관심도 역시, 그 시작은 희생자의 위치에 놓여있는 여자들의 삶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해요. 그게 '페미니즘' 이라는 거대한 프레임을 만나면서 업계의 어휘들과 현학적인 말장난, 소위 먹물들의 무한루프 말장난과 마주치신 걸텐데, 그걸 굳이 락방님의 '공부'가 부족해서 그렇다, 생각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사실 중요한 건 학습보다는 훨씬 더 공감일텐데, 락방님은 그런 재주는 타고 나신 분이니까. 



나는, 아무리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맞는 것 같고, 객관성은 개소리 같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에 확신은 갖고 있었지만 딱히 '이러이러해서 이렇다' 라고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던 차에 저 댓글은 나의 답답했던 마음, 내가 가진 생각을 너무나도 적확하게 표현한 게 아닌가. 내 페미니즘의 관심이 '희생자의 위치에 놓여있는 여자들의 삶'에서 시작됐다는 것, 그러므로 학문적으로 접근한 먹물들의 말이 파놓은 함정에 꼬꾸라지지 말라는 것. 시작과 흐름과 그리고 지금의 고민 혹은 빡침 까지 저기에 다 들어있는 거다. 가슴이 시원해졌고, 또 너무나 고마웠다.


뭔가 불끈불끈 용기도 나고 힘도 나고 그래서 알라딘에 뭐라뭐라 따지는 변명의 글을 올리고 싶었지만-'천연덕스럽게 revenge porn을 봤다'는  표현은 정말 마음이 아팠다, 나에 대한 경멸이 느껴져서 엄청 상처가 됐다- 뭔가 거기에 글 쓸 의욕도 안생기고, 또다시 이걸로 말섞고 싶지 않아서 관뒀다. 천연덕스럽게, 라니. 어떻게 저렇게 표현할까, 나를. 하- 됐고.


암튼 요즘 내게 데이트폭력이 너무 큰 충격이어서, 게다가 천역덕스럽게 리벤지 포르노 본 사람이 되어버려서, 스트레스를 대박 받고 있던 상황에서 컴퓨터까지 뻑이 나버리더라. 난 스맛폰이나 컴터 같은 기계장치가 내 마음대로 안되면 또 스트레스를 너무 받는 사람이라서, 진짜 최근에 스트레스가 대박이었다. 휴... 오늘은 새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고, 좋은 댓글도 읽었고(위의 댓글 말고도 저런 취지의 댓글과 말들을 여러차례 들었다), 조금 안정이 된다.




-  어제는 남동생과 퇴근후에 만나 술을 마셨다. 뼈찜을 앞에 두고 우리는 서로 주거니받거니 얘기를 했다. 연애에 대한 얘기부터 가십에 대한 것까지 이것저것 수다를 떨었는데, 연애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나는 남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전까지의 나는 한 사람이 내가 원하는 전부를 다 채워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언제나 연애를 하면서도 오픈된 상태였다, 그래서 다른 누구를 또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크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그것은 내가 내 중심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이런 자세로 연애해왔고,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연애에 크게 에너지를 쏟고자 하는 욕망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연애에서는 내가 다른 곳을 향해 열어두었던 문을 다 닫아걸어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한 사람만으로 다 충족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혹여라도 나중에 또 문을 열어두고 다른 사람을 기다리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한 사람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게 가능하다' 라는 말을 한거다. 


대부분 '남자들은 바람 필 기회를 마다하지 않는다' 라는 뉘앙스의 말들을 많이들 하는데, 나는 이역시 자신이 충족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그러니까 바람을 피는 게 남자들의 특징 같은게 아니라 충족되지 않은 욕망의 발현이 그렇게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는게 아닐까 한다는 거다-말이 어렵다..여튼). 한 사람만으로 충족되는게 쉬운 일도 아니며 또 인생에서 매우 자주 일어나는 일도 아니지만, 누군가와 커플로 지내고 있다면, 그런 충족되지 않음에도 신의를 지켜 한눈 팔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일테고, 신의보다는 자기 욕망에 충실해서 오픈된 상태로 이 부분은 이 사람으로부터 저 부분은 저 사람으로부터 채우려고 하는 게 아닐까. 뭐 이런식의 이야기들을 남동생에게 했는데, 내 말을 들은 남동생은 내게 말했다. 


누나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면, 누나는 지금 행복한거네.


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쩐지 부끄러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그러다 서로 잘난척을 하면서 너는 이해력이 부족해, 나는 암기력이 부족해 이러고 서로 갈구다가, '내가 관심있는 분야는 누나보다 더 내가 잘알지 않겠냐'는 말이 나왔다. 그래서 내가 그런게 뭐있어? 하니 스포츠? 하는 거다. 맞아 인정. 또? 연예? ㅋㅋㅋㅋ 그래 인정. 그리고 내가 받았다. 문학과 사회 에 대해서는 내가 너보다 많이 알걸? 이러고 같잖은 잘난척을, 정말이지, 우리 둘만 있으니까 할 수 있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동생이 그러는거다.



성인에 대해서는 내가 누나보다 많이 알 걸?



그래서 내가 그랬다. 


야, 그건 장담하지마. 나 만만치 않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자 남동생이 강동역 이바돔감자탕 집에서, 조용히 얘기하자, 라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최근에 지인이 연애를 시작했다가 쫑내기로 결심했다. 대화가 통화지 않는다는 것. 이 말이 오고 다른 말이 오고 적절한 리액션들이 보여지고 하는 것이 불가능해서 자꾸 위축되고 주눅들고, 만나면 점점 좋아져야 되는데 주눅드는 게 나아지질 않아 관둬야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거다. 반면 최근에 연애를 시작한 다른 친구는, 이렇게나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다는 데서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사소한 것들, 정말 별 거 아닌 것들, 이를테면 영화 볼거야, 뭐 볼거야? 이거 볼거야, 그 장르 좋아해? 다 보고 나서는 다 봤어, 어땠어, 어떤 영화였는지 얘기해줘 등의 같은 대화들, 사소한 걸 말하고 또 들을 수 있다는 것이 크게 만족스럽다는 거다. 그래서 내가 그거 뭔지 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나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많다는 사실이 떠올라 좋아졌다. 회사에서도 수다를 떨 사람이 있고, 집에서도 그렇다. 애인은 내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주고 기억해주며, 나의 친구들 역시 대화를 나누기에 즐거운 상대들이다. 


대화가 중요하다.


요즘 데이트 폭력이며 페미니즘 운운하는 '공부한 자들'의 말장난들에 크게 지쳐 정말이지 남성혐오에 이를 지경인데, 그렇지 않은 남성이 있다는 것을 내가 알고(어제 B 에게는 '너와 T 님 덕에 남성혐오를 하지 않을 수 있어 라고 말했다), 이렇게 온갖 것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며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서 남성혐오까지 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중심을 단단히 잡고 땅 위에 단단히 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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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
2015. 6. 22. 10:30

어제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친구가 쓴 글을 읽었다. 친구는 글속에서 나의 미숙함을 얘기하고 있었다. 페미니즘은 인간해방으로부터 시작된 거라는,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남녀라는 진영으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내 이해가 부족하다고 했다. 글속의 나는 무식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글은 정확했다. 나는 공부한지 얼마 안돼 모자랐고 서툴렀다. 서툴러서 섣부르게 다다다닥 하기도 했을터. 내가 아직 공부가 부족하다는 것은 사실이라 내가 좀 더 공부하고 좀 더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편, 아, 이친구는 그냥 나를 무식하게 보고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우리가 이 얘기를 나누고 시간이 지났는데 이제야 이런 글을 쓴다는 건, 이 친구에게도 이 일이 계속 남아있기 때문이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고. 일단 나는 친구에게 사과했다. 내가 서툴렀고 배움이 부족한 건 맞다, 이 과정에서 너에게 불쾌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면 사과한다고 말했다. 친구는 내게 너는 대체적으로 온건하고 책읽고 생각하는 태도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고가는 댓글은 나쁜 말이 결코 없었지만, 나는 우리 사이의 이 먼 거리를 좁힐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아침일찍에 그 글을 읽고 잠이 오질 않았다. 머릿속에 아주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인간해방? 모르겠다. 그러니 내가 공부하는 게 맞다. 내가 부족한 건 누가봐도 사실이다. 일단 내 스스로가 안다. 그렇지만 객관성, 이것은, 내가 여자라는 입장에서 보는 것보다 더 나아간, 더 위에 있는 성질의 것인가? 여기에 대해 진짜 내가 머리터지게 고민했다. 


객관성은 가장 위에 있는 개념인가? 이게 옳은가? 그러나 이게 가능한가? 사람에게 객관성이 있을 수 있나? 객관성을 자꾸 말할 수 있는 건, 어차피 본인이 남자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닌가? 이미 그쪽의 입장에서 객관을 얘기하긴 쉽지 않나? 객관이 얼마만큼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지? 이게 진짜 더 위에있나? 내가 이미 한쪽 진영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눈이 멀어 객관적이 될 수 없는건가? 객관은 궁극적 시선인건가? 지향해야 하는것인가? 그래야만 페미니즘은 앞으로 갈 수 있을것인가? 이친구가 지금에와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내내 이것에 대해 생각했을 터. 우리의 대화에서 받았던 상처를 이 친구도 받았던건가? 만약 다른 누군가가 그런 글을 썼다면 나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을텐데, 친한 친구라서, 또한 내 얘기를 하고 있어서 무시할 수가 없었다.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저런 글을 썼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또 아파왔다. 너무 아프고 슬펐다.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아 일어나서는 밥을 먹고 까페에 가 커피를 마시고, 그리고 일자산으로 향했다. 향하면서 너무 마음이 아프고 우울해서 자꾸만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는 것 같아서, 아, 생리전증후군이 지금은 아닌데, 그런데 생리전증후군약을 먹으면 그래도 좀 낫지 않을까, 이 우울함을 그냥 냅두면 나 진짜 큰일날 것 같은데, 싶어서 걷다가 가장 먼저 보이는 약국에 들어가 우먼스타이레놀 주세요, 했다. 그리고는 바로 앞 편의점으로 가 물을 사서는 꿀꺽, 타이레놀을 삼켰다. 머릿속에 이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도무지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내가 미숙해서 실수한건가? 이 친구와 이 시선을 좁힐 수 없나? 나는 결국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 그렇지만 객관적이라고? 그게 더 위에 있는게 맞아? 


하루종일 나는 이 감정으로부터 빠져나오고 싶었고 그래서 A와 M과 대화를 나눴다. 두 친구 모두, 특히 A 는 여기에 대해 나보다 더 열심히 공부중이었다. A 는 객관성을 말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는 사실을 남자들에게 인식시키기가 너무나 어렵다고 말했다. 게다가 남자들도 이런 환경의 피해자라는 생각이 든다고. 나 역시 그점에는 동의했다. A 는 세상을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바꾸기 위해 공부한다 말했고, 그래, 나도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못된 걸 알리고싶어해서, 그래서 이렇게 힘이든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래서 힘드나? 페미니즘 공부하기 전에는 이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왜 공부하고나서부터 힘든거지? 공부하지 말까? 공부를 하되 밖으로 꺼내질 말까? 엊그제 통화한 친구는 '니가 왜 교육을 시키려하고 책임감을 느끼냐' 라고 했는데, 역시 궁극적으로는 혼자서 공부하고 혼자만 깨닫는게 맞는걸까? 그러면 힘들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나의 고민을 듣고 M 은 '아니,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도 기본적으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지금은 성장통인것 같다, 시행착오인 것 같다는 말을 들으며,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것 아니겠냐는 대화들을 우리는 나눴다. 공부하고나니 더 힘들어지고, 이렇게하다가는 종국에 내 주변에 남아나는 남자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입을 닥쳐야 하나? 그렇지만 왜? 잘못된 것을 나만 아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혼자 잘하는 건 무슨 의미지? 일단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만이라도 잘못된 걸 바로잡을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건 중요하지 않나?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 공부하자 라고 우리는 결론을 내렸는데, 내가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지 않은가? 아직 문제를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 '문제야'라고 꺼내들 수 있는 것, 그것부터 시작해야 하는거 아닌가? 내가 잘못하고 있나? 이천번을 생각해도 나는 내가 맞는것 같은데? 객관성은 진짜 아닌데? 이건 정말 아닌데? 아무리 생각해보고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건 이해가 안되는데? 근데 이게 뭐라고 내가 이렇게 힘들어야하지? 그냥 쟨 저렇고 난 이렇다, 고 생각하고 넘기면 그뿐 아닌가? 왜 이렇게 아프지? 왜이렇게 슬프지? 나는 지금 되게 시간낭비 하고있는 거 아닌가? 머리랑 가슴이 막 폭발할 것 같았다. 그러다가 Y 님, 미숙이랑도 대화를 나눴다. 또 이곳, 내 일기장에서 측근님과 T 님의 댓글을 보았다. 고마웠고, 진짜 눈물이 핑돌았다. 나는 여전히 객관성은 받아들일 수가 없고, 사람이 객관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질 않는다. 그러면서 만약 내가 사귀는 남자가 객관성을 내게 계속 주장한다면 되게 힘들어질 것 같단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내가 사귀는 남자는 내게 객관성을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이러다가 내 주변에 남자가 남아나지 않겠어, 라고 생각하다가, 아니 그런데 굳이 남길 필요가 무언가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내가 생각하는 바를 들어주고 나를 이해하고 응원하며 지지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친구가 내게 답답함을 느끼고 나 역시 똑같은 바를 느꼈고, 이 사실이 무척 아프다는 것에는 틀림없지만, 하루종일 머리 터지게 고민해서 얻은 결과가, 나는 지금 내가 생각하는 바대로 또 이루고자 하는 바대로,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부족하지만 내가 맞는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하루종일 질질 짜면서 생각해봐도 내가 맞는 것 같다. 친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해서 들으려고 해본건데, 그래서 자꾸 머리터지게 고민해본건데, 그렇다면 내가 친한 사람들이 틀릴 수도 있는 거잖아. Y님은 하던대로 계속 해달라고 했다. 정리되지 못한 생각들이 내 글을 읽으면서 정리되기도 한다고. 그렇다면 이 마음 아프고 슬픈 일은 내게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는가, 라고 돌이켜보니 그렇지 않았다. 이건 결과적으로 내게 도움을 줬다. 그 글을 읽으면서 내가 아팠듯이 친구 역시 내 글에서 자신을 보며 답답하고 불쾌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글을 쓸 때 좀 더 신중하게 쓰자는 결심을 했다. 그러니 내가 이 일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은 아니다. 또한, B 가 내게 말한것처럼, 말하고 표현하는 데 있어서 유연해지도록 노력해야겠다는 것도 이번에 내가 깨달은 바다. B는, 내가 공부하고 생각하는게 좋다고 말했다. 


이번 일이 있어서 나는 내 공부가 부족하다는 걸 확실히 자각했고, 글 쓰는데 더 신중하자는 생각도 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기울일 필요는 있고 또 들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말이 다 맞는 건 아니다. 여전히 내게 객관성은 궤변으로 들리고, 그것이 더 나은 경지에 이르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앞으로 더 공부를 하고 더 생각을 하다가 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다가 내가 '아 중요한 건 객관성이야' 라고 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객관성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오늘 친구는 그런 글을 남겨 불쾌하게 했다면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결과적으로 좋았다,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마음이 아픈건 사실이었지만, 그러므로 나는 좀 더 공부할 생각을 했다, 라고 말했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친구는 또 인간해방을 들고 나왔다. 이게 중요한거라고, 그래서 내가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객관성을 또 얘기해...그래서 내가 우리 이렇게 얘기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나는 니가 맞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부족한 건 사실이니 공부하겠다고 했다. 친구는 여전히 나를 답답하게 여기는 것 같았지만, 나 역시 친구가 답답했다.



A와 M 과 Y 님과 미숙이와 얘기를 하면서 또 측근님과 T 님의 댓글을 읽으면서 나는 바닥에서 올라왔다. 밤이 되었을 때는 기분이 나아져있었다. 게다가 B 는 행복한 기분으로 잠들라며 폭풍스윗한 말들을 속삭여줬다. 아침에 일어나니 나는 가뿐해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존나 떠들기로 했다.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면 잘못됐다고 존나 지적질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대전까지 가는 사람은 자기 경험과 거리 개념이 일치한다. 인식론적 혼란이 없다. 이때 사람들은 세상과 자신이 일치한다고 느낀다. 의문을 품을 필요가 없거나 의문을 제기하기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힘든 위치에 서게 된다. 익숙하고 당연하니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 살면서 자기 경험이 보편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근거는 그저 서울에 산다는 사실뿐이다. 우연히 얻은 기득권과 이 사실에 대한 무지와 둔감함이 몸과 생각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p.9)



경계를 만났을 때, 가장 정확한 표지는 감정이다. 사회적 약자들은 자신을 억압하는 상황이나 사람을 만났을 때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쉬운데, 이건 너무도 당연하다. 감정은 정치의식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감정이 없다는 것은 사유도 사랑도 없다는 것, 따라서 삶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정(e/motion)의 라틴어 어원은 자기로부터 떠나는 것, 나가는 것(moving out fo oneself) 즉, 여행이다. 근대의 발평품인 이성(理性)이 정적이고 따라서 위계적인 것이라면, 감정은 움직이는 것이고 세상과 대화하는 것이다. 감정의 부재, '쿨'함은 지배 규범과의 일치 속에서만 가능하다. 반응하는 것. 이것이 인간의 모든 느낌, 모든 즐거움, 모든 열정, 모든 생각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p.34-35)




페미니즘의 도전

저자
정희진 지음
출판사
교양인 | 2013-02-2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여성주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어낸 획기적인 저작, 더 냉철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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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
2015. 6. 21. 08:14

방금전에 차분하고 침착한 태도를 가져야겠다고 결심했는데, 말과 글을 줄이고 한걸음 뒤로 가겠다고 결심하는 글을 알라딘에 쓰기도 했는데, 아...

 

퇴근해 아침에 들어오신 아빠가 거실에서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온다.

 

"ㅂㄱㅎ 지지율이 메르스 때문에 떨어졌대, 아니, ㅂㄱㅎ가 메르스 옮겼냐?"

 

 

아...발끈이 또 나올라 그래...... 어떻게 차분하고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고, 어떻게 말과 글을 줄일 수 있을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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