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23. 09:42

- m 과 a 를 만나 얘기를 나누면 우리는 마치 누가누가 더 찌질한가 내기라도 하는듯 짜증나고 속상한 일을 얘기하기에 바쁘다. 간혹 우리중 누군가는 눈물을 그렁그렁하고 또 우리중 누군가는 눈물을 질질 흘리기도 할만큼, 우리는 우리를 힘들게 한 일에 대하여 많은 얘기를 하는 것 같다. 누가누가 찌질한가, 경쟁하는 것 같달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요일 만남후 일요일이 되었을 때, 웃었던 기억밖에 나질 않았다. 우린 평소처럼 그런 찌질한 이야기들을 나눴던 것 같은데, 왜 웃었는지도 모를 것에 대해 웃었다는 잔상이 남아 있었다. 찌질한 이야기만 실컷 늘어놓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나름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것 같다. 아, 한번은 이 얘기에 빵터진 것 같다. 내가 한 말에 대해서.


나는 플라토닉 러브가 적성에 맞는 것 같아.


라고 했지. 그러자 m이 읭? 했던가. 이 얘기에 모두가 웃었던 것 같다. 왜웃죠? 네? 어째서 웃죠? 네?



- 그간 나는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소심한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연애를 하면 내가 모르는 나에 대해서 알게 되는만큼, 최근의 연애에서 나는 나의 소심함을 자꾸 발견하게 된다. 이 소심함은 내가 좋아하는 데서 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이 관계에 큰 행복을 느끼고 또 기쁨을 느끼면서도 일순간 쪼그라들게 된다. 


처음에는 더 심했다. 혹여나 말 실수를 하게 되지 않을까, 혹여나 뭔가 기분 나쁘게 하지 않을까, 무언가 실수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조심스러움이 가득차, 내 안에는 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가 보이는 게 아니라 나만 보였다. '그를 좋아하는 나'만 인식하고, '잘보여야겠다'는 마음이 가득했달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그가 하는 얘기들이 귀에 들어왔다. 정보로서의 그에 대한 것들이 아니라, 그가 말하고자 하는 자신의 기분과 마음 같은 것들이. 그것들이 처음엔 내게 와 닿을 수가 없었다. 좋다는 말조차도 내게는 닿지 못해, 계속해서 나는 '내가 좋아해'에 휩싸여 지냈던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이 나를 처절하게 약자로 만들고 소심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그는, 그의 표현을 빌자면 '최선을 다했'고 나는 이제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약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건 상대가 말을 들어주지 않을때, 상대가 내 마음을 모른척 하거나 몰라줄 때 나오는 말인 것 같다는 생각을 이젠 한다. 그러므로 좋은 관계에서는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약자'라는 공식이 성립할수 없다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되었다. 좋은 관계에서는 '약자'라는 느낌을 받는 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소심하다. 처음보다 많이 나아졌고, 이제는 약자의 포지션에 처박혀 있지도 않으며, 이제는 그가 보이고 그가 하는 말이 들리는데, 그가 나를 향해 얘기하는 그의 생각들과 마음들이 이제는 느껴지는데도 불구하고 소심함이 저기 어딘가에 처박혀 있는 것 같고, 나는 나의 이 소심함이 좀 마음에 들질 않는다.


지난주말에는 그가 친구들을 만나 내 얘기를 했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나는 이렇게나 많이 친구들에게 그의 얘기를 하면서, 한번도 그가 내 얘기를 친구들에게 할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자랑스러우며 아무것도 숨기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내 얘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대체 이 소심함은 뭘까. 연애중이냐 물으면 고민 없이 그렇다 하겠지만, 만나는 사람이 있냐고 물으면 역시나 그렇다 하겠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있냐 물으면 또 역시 그렇다 하겠지만, 남자친구냐 라는 물음에는 어쩐지 답을 할 수가 없게 되어 버린다. 차마 내가 내 입으로 그는 나의 남자친구다, 라는 말을 하는 것도 어색해, 두어번쯤 시도해보다 포기했다. 


누군가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 내게는 꽤 힘든 일이듯이, 누군가의 포지션을 정하고 말하는 것도 내게는 꽤 힘든 일이구나, 생각한다. 그런걸 내가 막 혼자서 해도 되나, 싶어지는 거다. 어쩌면 내게는 확신이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마음이 크다고 해서 저절로 해결되어지는 것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오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터에 방금전, 오늘자 w의 일기를 읽으니 가슴이 좀 싸-해졌다.



- 보쓰의 카드청구서 보고는 내가 들어간다. 간혹 청구서상에 큰 금액이 있으면 그 내용이 무언지 확인해놓고 혹여라도 보쓰가 이 큰 금액이 무어냐, 물으면 대응해야 한다. (자기가 쓴건데 그렇고, 자기 자식들이 쓴건데 나한테 확인하는 거다). 그러므로 나는 큰 금액에 대해서 자녀들에게 묻곤 하는데, 이번에는 11,000,000 원을 넘어가는 큰 건이 하나 있더라. 그래서 이건 뭐니, 라고 물었다. 그러자 둘째 자녀의 시계를 산 거라 했다. 세상이 엉망진창인건 뉴스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냥 내 주변도 엉망진창이다. 누군가는 취업이 안되 마음 졸이고 누군가는 천만원 이상의 시계를 아빠 카드로 산다. 나는 우리 삼남매가 몇년간 돈을 모아 간신히 괌을 다녀왔는데, 우리 식구가 괌에가서 쓴 돈의 세배가 넘는 금액에 이르는 시계를 누군가는 그냥 산다. 이런거, 좀 이상한 거 아닌가.



- 삼주전이었나 이주전이었나, 출판사 대표님과 실장님을 만났다. 두번째 책을 여름 전에 내자는 얘기를 했고, 나는 이미 원고를 다 넘긴 상황이지만 새로 작성해 주겠다 말했다. 그중에 마음에 안드는 원고가 있고, 어차피 시간 있으니 좀 더 양질의 책이 되도록 해보겠다고 말한 것. 이미 내가 넘긴 원고를 대표님이 다 확인한 상황. 알겠다는 답을 들었고, 그렇게 우리는 여름전 으로 막연하게나마 쇼부를 친 상태다. 


이 출판사는 좋은 책을 내자고 생각하고 있으며, 헐값으로 책을 팔겠다는 생각도 결코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책에 이벤트를 걸지도 않을 것이며, 십프로 이상되는 할인률을 정하지도 않겠다고. 한꺼번에 많이 팔리는 책이 될 수는 없겠지만, 눈 밝은 독자들은 계속 알아볼 수 있는 그런 책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여태 잘해오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이 모든 것에 동의하긴 하지만, 그래서 이 출판사 책은 베스트셀러가 될 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 책에 대한 마인드에 동의하지만, 가끔은 답답하기도 했던 것. 대표님은 내게 몇 번이나 미안하다 하셨다. 락방님 책도 더 큰 출판사에서 더 크게 마케팅 했다면 더 잘 팔렸을 텐데요, 라면서. 더 잘팔리는 책이 되었다면 물론 좋았을 것이고, 그러므로 몇 번은 마케팅에 더 힘을 좀 쓰지, 하는 원망이 들기도 했지만, 그러나 이렇게 뚝심있게 나가기 때문에 더 신뢰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번의 만남에서 나는 책에 대한 아이디어를 냈다. 이건 그냥 생각해본건데요, 하면서. 내가 생각한 책이 어떤 것인지 곰곰 듣고 있던 대표님과 실장님은, 아주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했다. 처음에는 반응이 별로인 것 같아, 이게 이 출판사와 맞지 않으면 저는 원고만 보여드리고 다른 데를 찔러 볼게요, 라고 했는데,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난 뒤에는 여기서 하자, 고 한것. 물론 머릿속 구상이라 실제 내가 그 원고를 쓰게 될지 안쓰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여튼 지금 생각으로는 머릿속에 새로운 책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는 출판사로부터 호응을 받았다. 



- 오늘, 엄마의 조직검사 결과를 듣게 될 것이고, 결과가 무엇이냐에 따라 수술 스케쥴 같은 것도 잡게 될 것이다. 간단한 암수술이라니, 뭐 이래저리 생각이 많은데, 역시 '암이 아닌 쪽'이 좋겠다. 암이라고 해도 수술은 잘 될것이고. 그 후에는 이제 차츰차츰 주말마다 원고를 쓰는 일에 조금씩 시간을 바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게 근무시간에 페이퍼 쓰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기분을 주는 터라, 확실히 '일'이라는 느낌을 준단 말이지. 



- 그게 뭐든, 갈 길이 아주 멀다는 생각이 든다. 갈 길이 멀다.

멀지만, 별 수 없다.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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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
2015. 2. 20. 18:19

- 며칠전에 w 님의 블로그 글을 보고  K 생각이 났다. w 님이 남친과 오뎅집을 갔는데 오뎅집 사장님이 남친에게 '총각은 참 운이 좋다'고 말했단다. '아가씨를 5년간 봐왔는데 사람이 참 좋았다'고. w 님의 이 일기를 읽고나니 내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게 자동적으로 떠오른 거다.

 

K는 내가 아주 오래전에 좋아했던 사람인데, 한창 친하게 지냈더랬다. 나는 K 를 이성으로 좋아하고 있었지만 K 는 나를 친구로 아끼고 있었고, 나는 이게 싫지 않았다. 여튼 우리는 어떤 일을 계기로 급속하게 친해지게 되서 허구헌날 새벽에 통화하고 자주 만나 술을 마시곤 했는데, 한번은 대학로에 있는 K 의 집근처에서 술을 마시기로 해서 내가 그리로 갔다. 당시 K 의 집은 3층이었고, 1층이 호프집이었다. 그러니 그 호프집은 K 의 단골집이 되었는데, 나랑 K 는 그날 그 호프집에서 술을 마셨던 것. 술을 다 마시고 계산을 하기 위해 K 와 나란히 섰는데, 그때 그 호프집의 사장님이 K 에게 말했다. 어휴, 아가씨가 참 예쁘네. 미인이야. 라고. 움화화화화화화화핫. 그때 K 가 어떤 반응을 보였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나중에 '총각도 잘생기고' 라고 말했던 걸로 보아 그 칭찬의 진정성은 떨어지는 듯............................

 

암튼 그 후에 2차를 가기로 하고 나왔는데 K 는 내게 자신의 집으로 가자고 했다. 바로 위에 자신의 집이 있으니 맥주를 사가지고 들어가자고. 그래서 나는 별 거리낌없이 그러자고 했다. 뭐 우리가 당시 썸을 타던 사이도 아니고, 그가 나를 여자로 본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간 알아온 시간도 있고 하니 사실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가 나를 어떻게 해볼 의도로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충분히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마트로 가 술과 안주 몇 가지를 사고 그의 집엘 갔다. 날은 겨울이었고, 나는 코트를 빨래대에 벗어두었다. 벗자마자 그와 나는 부둥켜 안았으면 좋았겠지만, 그는 개가 싸놓은 똥을 치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가 집을 비운 동안 개가 똥을 싸놔가지고....개똥을 다 치운 후 그는 내 코트를 정리했다. 나는 그가 내 코트를 옷걸이에 걸어 정리하는 걸 보는 게 좋았다. 나는 엉망진창으로 벗어두는데... 하면서. 그러다 개에게 육포를 주던 내게 그는 지청구를 늘어놓았다. 개 입맛 고급으로 들이지 말라며....니가 육포 주고 쟤가 육포 먹기 시작하면 앞으로 육포만 찾는다고 주지말고 너나 먹으라고... 여튼 그래서 본격적으로 앉으라 해 식탁에 앉고 맥주를 마시는데, 그때 그가 그랬다.

 

내가 집으로 오자고 해서 니가 혹시라도 오해할까봐 말하는데, 나는 너를 어떻게 해보려고 집에 오자고 한 게 아니야.

 

그래서 나는 안다고 했다. 그런 생각 하지 않았다고. 그렇게 생각했으면 내가 왜 왔겠냐고. 난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이러는게 아닌가.

 

 

물론, 나도 남자라서 너 보면 가끔 불끈불끈해. 그렇지만 널 어떻게 하진 않을거야.

 

읭? 이게 뭐라?????????????? 지금 뭐라는 거임????????????????? 나는 잠시동안 말을 잃었던 것 같다. 뭔가 전혀 새로운 말을 들었달까. 너..나를 그렇게 대한 적 한번도 없었잖아? 여튼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날 술 잘마시고 아무일 없이 집에 돌아갔다. 그날 얌전히 돌아가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뭔가 달라져있을까? 별로 그럴 것 같진 않다. 뭐, 그 뒤로도 K 와는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

 

w님의 오뎅집 사건을 읽고 나니 어느덧 여기까지 추억을 되새겼구나.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 그날 호프집에서 k 는 내게 향수냄새가 좋다고 말했다. 묵직한 향이라며, 이 묵직함이 무척 좋다고. 그때 내가 당시에 뜨레졸을 뿌렸었던가, 샤넬을 뿌렸었던가 생각나지 않는데. 여튼 이 둘 중 하나였던 것 같다. 퇴근후여서 향수냄새가 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내가 움직일 때마다 냄새가 난다고 했다. 좋은 향수구나. ㅋㅋㅋㅋㅋ 보통 내 육체는 향수냄새를 겁나 빨리 먹어치워가지고 아무도 내가 향수 뿌렸다는 사실을 모르는데 ㅎㅎㅎㅎㅎ 그렇지만 나는 매일매일 향수를 뿌리는데... ㅋㅋㅋㅋㅋㅋㅋ 아무도 몰라 아무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벌써 샤넬no5 를 두병째 다썼다. 그것도 두병 다 100ml 였다. 왼쪽과 오른쪽에 남은 향수는 모두 선물받은 것인데, 향이 다 좋긴 하지만 내가 딱 좋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터라, 이번 괌 여행중 면세점에서 향수 하나 사자고 마음 먹었었는데, 결국은 사질 않았다. 그냥 있던거 다 쓰고 사야겠다. 저 병은 이제 버러야지. 다 쓴 병. 이제 다른 향수 사야지. 내 향수는 내가 사는 게 진리인듯.

 

 

 

- 어제 내 방 침대에 여동생이 누워 둘째를 안고 옆에 첫째를 눕게 했다. 첫째 조카는 나를 보더니 이모도 옆에 누워, 한다. 그래서 옆에 누웠다. 첫째가 좋아했다. 그리고 여동생과 이런저런 얘기를 조금 했는데, 여동생은 그런 말을 했다. 결국 언니 결혼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하고 하는게 편한 것 같어, 라고. 그래서 내가 말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라고. 내가 여태 그런 연애를 했었는데, 그거 되게 편안하고 안정적이지만 딱히 행복하질 않아, 라고. 여동생은 그러냐고 되물었고 그래서 나는 계속 말했다. 응, 나는 내가 좋아해야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 내가 더 많이 좋아하는 게 행복해. 물론, 그건 그렇게 편안하진 않지만. 그러자 여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뭐가 됐든 장단점이 있구나, 했다.

 

 

- 그리고 기억에 관한 것. 어젯밤, 제부와 남동생과 나는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러 나갔다. 삼겹살과 소주를 앞에 두고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하는데, 남동생이 그러는 거다. 자신의 여자친구가 아주 사소한 것까지 기억을 아주 잘한다고. 자신의 차번호, 전화번호 등등 모든걸 다 잘외우는데 자기는 그렇지 못하다고. 그래서 혹여라도 자신이 틀리게 대답하면 여자친구가 화를 낸다는 거다. 최근에 생일날짜를 헷갈려 잘못 말해 여자친구가 화를 냈다길래, 내가 그랬다. 그런거 틀리지마, 라고. 존나 서운해, 라고. 그러자 옆에서 제부는 남동생을 거들었다. 자기도 기억을 진짜 못하겠는데 여자들의 기억력은 진짜 대단한 것 같다고. 확실히 남자들의 기억력은 여자들의 기억력만큼 디테일하진 않은 것 같다. 또한 기억하는 분야가 다르기도 하고. 그와 내가 똑같이 같은 걸 기억할 순 없는 거다.

 

 

 

- 남동생과 나는 한쪽눈에만 쌍커풀이 있다. 아니, 남동생에 대해서라면 '있었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남동생의 나머지 눈에도 쌍커풀이 생겨, 이제는 양쪽 눈이 다 쌍커풀이 있는데, 우리는 항상 사진이 잘 안나오는 이유가 이 '한쪽눈에만 상커풀이 있는' 눈 때문이라 여겼던 바, 나는 남동생에게 '야 이제 양쪽 다 생겨서 사진 잘나오냐?' 라고 물었다. 그러자 남동생은 '아니, 병신 같아.' 라고 말했다.

 

야, 양쪽 다 생겼는데 병신이면 그전에는 뭐였어?

 

라고 묻자 남동생이 답했다.

 

상병신이었지.

 

하아- 나는 나머지 한쪽 눈에 쌍커풀이 생기면 모든게 다 바로잡힐 거라고 생각했는데(응?) 그래봤자 상병신에서 병신으로 승격되는 게 전부란 말인가. 정녕 희망은 없는 것인가...

 

 

 

- 술이나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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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
2015. 2. 17. 11:35

- 가족끼리의 여행이 무조건 즐거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무조건 즐겁지는 않았다. 일단 첫날부터 내 계획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공항 내의 레스토랑부터 호텔로 들어가는 택시까지, 호텔안의 레스토랑에 이르러서는 '뭐야, 내 생각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 하고 부르르 떨었더랬다. 택시비에 전전긍긍하며 내 판단 착오를 자책했고, 가족들앞에서 내가 이것에 자책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둘째날. 렌트한 차량을 거침없이 운전해주는 남동생과, 우리가 선택한 리티디안 곶이 예상보다 아름다워서 가족 모두가 흥분한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들었다. 해변도 마음에 들고 그곳에서 모두 '이런 곳은 처음이야' 라고 흥분한 그 순간들도 좋았다. 그 뒤로 우리가 선택한 장소들도 나쁘지 않았고, 우리는 '리티디안 곶' 만으로도 괌에 온 이유는 충분했다고 모두 만족해했다.


- 그러나 여행에서의 묘미는, 내가 먹고 싶은 걸 돈 아끼지 말고 맘껏 먹자는 데 있는데, 그걸 할 수가 없어서 일순간 스트레스를 받았더랬다. 아버지가 당뇨이시니 당연히 음식을 신경써야 하고 약도 챙겨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고작 2박3일인데 뭐 어떠랴 싶어 나는 레스토랑 혹은 메뉴까지 다 계획해두었던 것. 그러나 아버지는 음식에 신경쓰셨고, 메뉴들에 좀 예민해지셨던 터라, '아, 먹방찍는 걸 포기하고 아버지 위주로 맞춰야겠구나' 라고 결국은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정이 내게는 못내 아쉬웠고, 아버지가 잠깐 원망스러웠다가, 그렇지만 몸이 아파서 신경쓰겠다는 게 대체 그걸 어떻게 하지말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B 에게 얘기하니, 당뇨는 식단 조절을 하지 않으면 바로 그자리에서 쓰러질 수 있는데 아버지라고 왜 먹고 싶지 않았겠느냐, 그곳에서 쓰러지지 않으려고 신경쓰신 건데, 그거야말로 니네 생각하고 당연했던 게 아니었느냐, 라는 말을 하더라. 그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나의 모든 공감능력과 이해심은 세상 모두에게 잘 발휘되는데, 유독 아버지에게 인색하게 발휘되는 건 아닌가, 하고. 


- 음식의 메뉴들을 시키고, 물을 사마시고, 입장료를 내고 할 때마다 '이건 얼마냐'를 묻고 '아이구 비싸다' 라고 말씀하시는 부모님들 때문에 결국 나는 '묻지 말고 먹어!' 라고 말해버리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운전에 일일이 훈수를 두는 아버지 때문에 결국 참지 못하고 남동생도 '그러지좀 말라'고 말해버리게 되고. 남동생과 나는 순간순간 '우리가 매일 오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번이잖아' 하며 다독이려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확- 치밀어 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더라. 아버지는 본인이 통제하길 원하시고 식구들 모두가 당신의 말을 들어주기를 원하시는데, 낯선 나라와 낯선 사람들 그리고 낯선 언어들 속에서 그걸 뜻대로 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으시는 걸로 보였다. 일단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위화감을 느끼셨던 듯. 공항에 도착하고 호텔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그러니까 외국을 처음 나가보는 상황에다가 '택시기사와 대화하는' 중에 본인이 알아들을 수도, 끼어들을 수도 없다는 상황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셨던 것 같다. 



- 가난했던 어린 시절 탓인가, 아버지는 음식점에서 음식을 남기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번번이 싸우게 된다. 나도 음식을 남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지만, 배부른데도 '하나씩 먹고 치우자'라고 하는 마인드에는 도무지 동의할 수가 없는 것. 나는 계속 '배부르면 그만 먹고 남겨' 라고 말하고 아버지는 '아까우니까 하나씩만 더 먹고 치우자' 라고 한다. 그럼 또 나는 울컥 해서는 '음식은 아깝고 아빠 몸뚱아리는 안아까워?' 라고 톡 쏘고는 한다. 게다가 끼니때마다 모든 식구들이 모두 제 몫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모두가 함께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아주 강하신데, 내 나름으로는 그걸 아버지가 어릴 적에 식구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한다. 가난했고 형제가 많았던 집안의 다섯째였던 아버지는 배우지도 못했고 가진 것도 없었다. 그런참에 당신만의 '가족'이 생긴 것이고 그 가족이 '모두 다 함께' 해야 하는 건 굉장히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아버지는 어릴 적에도 친척들이 명절이라든가 행사가 있어 다같이 모이게 될때, 내가 다른 친척들, 이를테면 고모나 할머니등과 같이 가려고 하면 그걸 그렇게나 싫어하셨다. 꼭 당신이 데리고 다녀야만 하셨다. 


괌공항에서 출출했던 우리는 간단히 밥을 먹기로 했는데 소화가 잘 되지 않았던 엄마는 먹지 않겠다 하셨고, 아빠는 이에 또 버럭 하시며, 왜 네 몫을 시켜 먹지 않느냐, 라고 하셨다. 엄마는 배가 고프지 않다고 하셨고 아빠는 '다같이 먹어서 다같이 배고픈데 당신은 왜 안고프냐' 라고 하셨는데, 하아- 여기에서 나는 또 스트레스를 받아가지고...뭔가 한마디 하려다가 꾹 참고 일단 메뉴들을 시켜서 음식을 가지고 왔다. 우동 국물이 싱거웠고, 엄마는 당뇨인 아버지에게 싱거운 음식이 좋다며, 굳이 이것좀 드셔보시라며 그릇을 아빠 자리로 옮기는데, 공항내의 스티로폼 일회용 그릇이라 무척 약해서 휘청였다. 그때는 나도 도무지 더 참을 수가 없어 말했다.


아, 내가 진짜 말하고 싶은데, 우리, 서로를 너무 생각하지 말자. 너무 생각하니까 오히려 화가 나잖아. 아빠는 엄마가 먹고 싶을 때 먹게 그냥 내버려두고, 엄마는 그냥 그릇 앞에 두고 아빠 먹고 싶으면 먹게 둬. 



- 애초에 목적은 처음으로 부모님 해외여행을 시켜드리는 것, 기내식을 드시게 하고 좋은 레스토랑에서 밥을 드시게 하고, 좋은 숙박시설에서 모두 함께 지내는 것이었다. 다녀와서 부모님이 뿌듯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 그리고 이 목적은 이루어졌다. 아버지는 괌에서 지내다 일정 시간이 지나니 당신이 영어를 하나도 하지 못한다는 것에 위화감을 느꼈던 마음을 버리고, 우리가 자식새끼들 대학까지 가르쳐놨더니 외국에 와서 영어로 대화를 하네, 라며 결국은 감탄에 이르셨던 것. 니네 어쩜 그렇게 영어를 잘하냐, 언제 그렇게 영어를 배웠냐, 하셨던 거다. 우리가 했던 영어라고 해야 사실 별 거 없다. 이거 얼마냐, 네 명이다, 이 메뉴 줘라 등등. 기본적인 것들이었는데, 이게 아버지에게는 꽤 유창하게 보였던 것 같다. 


아버지는 낯선 환경을 싫어하시고, 이 여행도 달가워하지 않으셨더랬다. 나는 아버지의 그런 성향을 아주 잘 알고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다녀와서는 그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사진을 많이 찍으셨고 벌써부터 한국으로 돌아가 사람들을 만나 자랑할 생각에 신나하셨다.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갔다는 것, 자식들이 돈을 다 대주었다는 것, 아름다운 해변에 갔다는 것들을 자랑할 것이고 가장 크게는 '우리 자식 새끼들이 영어를 그렇게나 잘한다'는 걸 자랑하겠다 하셨다. 그 점이 몹시 흡족하다 하셨다. 나는 그 점에 크게 흡족했다. 이정도면 내가 원하는 바를 충분히 달성했다고 생각했다.



- 우리가 머물었던 숙소는 로비와 마트, 레스토랑 에서 와이파이가 되었으나 객실 내에서는 와이파이가 되지 않았다. 이 점은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와이파이가 되었다면 아마 남동생과 나 또 엄마까지 일정 시간을 혹은 많은 시간을 스맛폰을 들여다보며 지냈으리라. 그래, 이게 더 나았어, 함께 온 여행에서는. 이라고 모두 다같이 생각했다. 그러나 남동생과 내가 둘이서 마트를 간다거나 할때는, 서로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깐 와이파이 쓰고 갈까?


라고 하며 의자에 앉곤 했다. 그리고 잠깐동안의 시간이 흐르면 


이제 들어갈까?


하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 와이파이가 되는 곳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가는 곳이 거의 해변이다 보니 실제로 인터넷을 쓸 시간은 별로 없었다. 인터넷이 되는 틈틈이, 나는 B 에게 연락을 했고, 나에게는 그게 중요했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와 B 가 '여행을 오롯이 즐기는 게 좋지 여행중에 다른 사람에게 연락하는 건 싫다'는 말을 듣고 되게 서운했다.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고, 또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내게는 '이 낯선 곳에 있으면서도 여기에 내가 있고 거기에 네가 있다'는 걸 인식하는 게 꽤 중요한데. 여행을 오롯이 즐긴다는 게, 단순히 여행지에서 먹고 자고 보고 하면서 '나를 둘러싸고 있었던 원래 장소의 사람들을 잊고 타지에 열중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나를 둘러싼 원래의 장소와 시간과 사람을 잊지 않고 타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내가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일 수도 있는건데. 나는 나를 그렇게 확인하곤 했는데. 나 여기있어! 하면서. 나에게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안부가 아주 중요하고, 그렇게 내 안부도 전하고 싶은데. 그렇지만 싫다고 하니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걸 어제 막내랑 술먹던 중 얘기하니 막내가 그러더라.

"그런데요 과장님. 제 친구의 남자친구가 스페인에 가있는데요, 이십사시간 내내 연락한대요. 그래서 이새끼가 어디에 있는건지 모르겠다고, 귀찮다고 하더라고요. 그것보다 낫지 않아요?"


아..웃었어......




- 가족을 포함하여 친구나 애인이라고 해도 '여행 궁합'이 맞기는 힘든 것 같다. 어떤 관계라도 여행을 함께하다 보면 틀어지기가 너무 쉬운 듯. 그러므로 '여행메이트'는 따로 만들어 두는게 되게 중요한 것 같다. 익숙한 곳에서 함께 하는 것과 낯선 곳에서 함께 하는 건 생각보다 많이 다르다. 내 가장 좋은 여행친구는 D 이고, 그러므로 포르투갈도 D 와 함께 당연히 가기로 했는데, 이번 괌 여행을 하면서 나는 남동생도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영어로 길을 물어야 할때마다 옆에 남동생이 있어서 되게 든든했다. 내가 이만큼 알아듣고 니가 이만큼 알아들어주면, 이걸로 충분하겠지, 하는 심정이 되어서 안도했달까. 많은 부분을 남동생에게 감사한다. 기꺼이 렌트해서 운전하겠다고 말해준 것도, 같이 들어줘 라고 말하면 옆에서 낯선 외국인의 말을 같이 들어준 것도. 심지어, 와이파이 잠깐 하고갈까? 라고 말했던 것까지. 얘는 진짜 최고다.



- 괌에 도착해서 낮은 건물들, 영어로 쓰여진 간판들, 양쪽으로 펼쳐진 나무길들, 어딜 가나 보이는 해변들 때문에 순간 확- 기분이 좋아지고 흥분이 됐었다. 홍콩 여행중에 잠깐 혼자만의 시간,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 역시 아무도 모르는 낯선 거리를 잠깐 걷는데 그때 갑자기 확- 흥분이 되는 거다. 그래, 이거야! 하면서. 그 기분을 괌에서도 또 느꼈다. 낯선 상황, 낯선 사람은 늘 두렵지만, 그러나 그 와중에 흥분을 주기도 하는 것 같다. 난 지금 전혀 다른 새로운 곳에 와있어!

특히 나는 영어권 나라에 갈때 그런걸 느끼는 것 같다. 맨하탄에 도착했을 때, 길바닥에서 소리 지르고 싶은 걸 얼마나 참았던가! 나는 아직도 대낮, 맨하탄에 도착해 여동생에게 전화하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 여행 내내 즐거웠던 건 아니지만, 목적한 바는 다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기를 잘했다는 것도. 두려워하시던 아버지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다음에 올때는' 이라고 자꾸 말씀하셨다. 하하하하하. 이제 아버지는 '다음'을 얘기한다. 

역시, 처음만 어려운 거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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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