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에 백화점에 갔었다. 가기 전에 이니스프리 매장에 들러 떡진 앞머리용 파우더를 샀고, 백화점에 가서는 A/S 맡긴 목걸이를 찾았다. 찾아가지고 나오면서 잠깐 반지를 구경했는데,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의 매장에서 반지를 엄청 할인하고 있는 게 아닌가. 마침 진주알맹이 반지를 갖고 싶었던 터라, 구경하다가 진주 장식 들어간 반지를 껴봤는데, 딱히 어울리는 느낌이 아니었다. 이런 디자인으로는 곤란하구먼, 하고 나오려다가, 남색 큐빅이 들어간 다른 반지를 그냥 껴봤는데, 와, 너무 예쁘게 잘 어울리는 거다. 직원분이랑 나랑 어쩜 이렇게 잘어울리냐, 너무 예쁘다 하고 좋아했는데(응?) 직원분이 '이거 신데렐라 반지에요' 하더라. 신데렐라 반지가 뭐에요? 물으니,
이제 품절시킬 반지들이라 하나씩 밖에 안남아서 사이즈 맞는 사람에게 거의 절반 가격으로 주는 반지라는 거다. 오호라? 그래서 내가 본 진주반지도 또 방금 껴본 남색큐빅로즈골드 반지도 죄다 12만원인거다!!
12만원이면 살 만한 가격이다, 내가 지난 주에 제주를 갔다와서 돈을 엄청 써가지고(호텔비... ㅎㄷㄷ), 일시불로 긁는다면 타격이 크겠지만, 3개월 할부로 긁으면 한 달에 4만원만 갚으면되는데...하면서 엄청난 갈등이 시작됐다. 그렇지만 내가 갚아야 할 할부가 지금도 얼마나 많은가. 거기에 4만원을 늘린다면...아아, 너무 빡세진다. 게다가 지금의 할부만으로 그칠 게 아니라, 아직 여름휴가를 예약하지 않아서, 여름휴가까지 예약해버린다면 할부는 또 어마어마하게 늘어날 터, 4만원을 늘리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멈칫하게 됐다. 그렇지만,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예쁘게 어울리는 반지를 득템하면 좋지 아니한가, 하다가, 그런다고 다 사면 거지꼴을 면치 못할거야...라는 생각이 반지를 껴보고 자꾸 왔다리갔다리 하는거다. 아아, 그래서 마침 배가 고픈 터라, 제가 잠시만 생각해보고 다시 올게요, 하고는 일단 백화점을 나왔다.
그리고 내가 이 백화점에 갔던 이유, 쫄면순두부찌개를 먹으러 갔다. 백화점 뒷편 골목에 순두부 가게가 있는데, 여기 메뉴중에 쫄면순두부지개를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거다. 주말에 조카네가 올 걸 알면서부터, '그 식구들 돌아가고나면 혼자 백화점 가서 쫄면순두부 먹고 올거야'를 계획했었다. 토요일에 술 사느라 장 보면서 남동생한테 '일요일에 혼자 백화점 갔다가 쫄면순두부 먹고 올거야' 해가지고 남동생이 엄청 웃었는데, 나는 정말 그렇게 한 것이다. 만세!
이 쫄면순두부는 딱히 뛰어난 맛인 것도 아니고, 다른집 순두부찌개보다 맛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이상하게 이걸 먹으면 진짜 너무너무 좋다. 오늘도 퇴근 후에 먹고 싶지만 참아야지.... 여기에 혼자 가서 쫄면순두부 시켜놓고 먹는 시간이 내게는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뭔가 좋아..... 다음에는 혼자 가서 이렇게 쫄면순두부 시키고 소주도 시켜 먹어봐야지, 생각하고 있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어쨌든 그래서 이렇게 먹으면서 좋아하면서 반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사지 않기로 결심했다. 손에 끼워봤을 때 너무 갖고 싶었는데, 이렇게 밥 먹으면서 배가 불러오고, 그러면서 생각해보니, 그걸 갖지 않아도 나는 괜찮은 거다. 그래, 사지말자, 내가 버는 돈은 한계가 있는데, 쓸 때 무슨 한계없는 사람처럼 쓰려고 해, 그만 둬, 반지 대신 쫄면순두부나 사먹어, 라고 생각하고 반지를 포기할 수 있었다. 포기하고 너무 생각나지 않을까...했는데, 생각은 나지만 또 '너무'까지는 아니어서 괜찮을 것 같다. 지금 긁어놓은 할부와 앞으로 긁을 할부들을 위해서, 돈을 좀 아껴야지.
이번에 제부랑 술을 마시다가 제부가 다이어트 중이란 걸 알게 됐다. 그간 다이어트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던 사람인 걸 알기 때문에 그렇게 결심하게 된 계기가 뭐냐, 라고 물었더니 '병원에서 살 빼래요' 하더라. 오, 그렇구만. 제부도 술을 좋아하고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너무 빡세게 하면 스스로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아서, 적당히 하기로 했단다. 그렇게 결심한 게, 지금처럼 헬스장에 가서 런닝머신 뛰는 거는 계속 하고, 밀가루를 가급적 삼가고, 혼자서 마시는 술은 끊기로 했다는 것. 그렇지만 우리를 만날 때 마시는 것처럼, 사람들과 만나서 마시는 술까지 안마시진 않겠다는 거다. 밀가루만 끊었는데도 2주간 3키로가 빠졌다고, 앞으로도 그러겠다고 하길래 응원해줬다. 그리고 나도 새롭게 의욕을 다지게 됐는데, 나 역시 빡세게 하기 보다는 밀가루 가급적 삼가는 걸로 다이어틀 했었던 바, 뭔가 자극이 되는 거다. 그래서 이제부터 나도 밀가루 가급적 안먹고, 누구를 만나서 마시는 술이 아닌 혼술도 역시 가급적 삼가자...라고 생각했다가,
아, 그런데 나는 혼술 진짜 너무 좋은데...혼술의 시간이 내게는 힐링힐링한 시간인데...하는데 생각이 미치자, 그러면 이건 좀 두고봐가면서 하자,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번 술자리에서는 제부랑 또 언성이 높아졌었는데, 진보와 보수에 대해 얘기하고 청문회에 대해 얘기하고 다음 대선 후보에 대해 얘기하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랄까, 어느 순간 대화가 되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로 목소리 높였는데, 어느 순간 제부가 '그런가' 하고 '그 말은 맞는 것 같아' 이러고 있는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뭔가 즐거웠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씐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제 페미니즘만 장착하게 하면 되는데...이건 포기해야 되나.....
그런데!! 의외의 곳에서 페미니즘 포텐 터졌으니, 바로 우리 타미다!!!
타미가 지난주에 독감 걸려 유치원을 못갔고, 그래서 울엄마도 엄마의 시간 없이 내내 타미랑 같이 있었던 거다. 게다가 주말에 그 식구들이 우리집에 오니, 엄마는 그야말로 혼자서 오롯이 쉴 시간이 없었던 것. 그런 차에 우리집에 와서도 아빠 생신이라며 육개장을 끓이고 반찬을 만드노라니, 그걸 보다 못한 아빠가 '이제 그만 하고 쉬어'라고 한거다. 그래서 엄마가 '이것 마저 하고' 라고 하자 아빠가 '좀 쉬었다 해' 라고 한거다. 나는 이에 말을 보태지 않고 가만 있었는데, 우리 타미가 내가 할 말을 다 하더라.
'할머니가 쉬려면 할아버지가 해야지!' 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이녀석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잘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래서 할아버지와 손녀의 싸움이 시작됐는데, 할아버지가 '나도 많이 한다, 빨래도 개고 청소도 하고 ..' 하면서 얘기를 하자, '할아버지는 할머니 있을 때는 안하잖아!' 라고 하는 거다. 브라보!! 아아, 나의 조카여. 너에게는 이모를 닮은 지옥의 페미니스트 기질이 뿜어나온다!!! 고작 일곱살인데!!!!! 만세다 만세!!!!!!!
여동생에게 이 일화를 얘기하니, 갑자기 여동생이 '언니한테 받은 악영향'에 대해 얘기한다. 응? 뭔데? 했더니, 뭘 시키면 말을 되게 안듣는데, 그럴 때마다 이런단다.
"이모가 늘 그랬어. 사람은 다 다르다고. 난 이거 하기 싫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내가 여동생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